본문 바로가기

방글라데시 뉴스모음/방글라데시 뉴스

노벨평화상 받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국유화' 논란


서민을 위한 무보증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사업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이 또 한 번 시련을 겪고 있다.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가 국유화하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나라 안팎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그라민은행이 소액대출과 상관 없는 회사들을 세워 본래 취지를 위반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여기에 그라민은행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전(前) 총재 일가의 부정축재 혐의까지 든다. 반면 유누스 전 총재와 지지자들, 야권은 유누스 전 총재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한 정치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 방글라데시 정부, 그라민은행 지분 51%로 확대 계획

그라민은행이 싹을 틔운 것은 1973년. 당시 대학교수였던 유누스 전 총재는 담보 능력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의 창업 자금을 빌려주는 데서 시작했다. 작은 동네에서 움튼 개인 프로젝트는 10년 후 은행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시골’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시골에 사는 840만명의 빈민 여성들이 이 은행의 고객이다. 이들은 그라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주주다. 이사회도 이들을 대표해서 선출된 9명과 정부측 인사 4명으로 구성된다.

국유화 논란은 정부위원회가 최근 정부에 제출한 예비보고서에서 정부 지분율을 51%로 늘려야 한다고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법적으로는 정부가 그라민은행 지분을 25%까지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은행의 지분 구조는 불분명하다. 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한 보고서에서 그라민은행의 정부 지분이 3.29%라고 밝혔다. 그라민은행측이 밝힌 정부 지분도 5%와 25%로 오락가락한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지난 6월 170만달러를 투입해 지분율을 3%에서 25%로 늘렸다는 보도도 있다. 


 그라민은행에서 대출 받은 방글라데시 여성들과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전 총재/그라민은행 홈페이지

정부위원회는 작년 5월에 구성됐다. 그라민은행과 48개 계열회사의 활동을 조사하라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 위원회는 공식보고서 발표에 앞선 예비보고서에서 그라민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을 과반으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또 지금의 중앙집권형 은행 구조도 19개 독립은행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안 대로라면 그라민은행의 지배권은 소액대출자들 손에서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공식보고서는 이르면 이번 주에 발표될 예정인 걸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누스 전 총재는 “정부의 명백한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사설에서 “그라민은행을 정부조직으로 바꾸려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움직임은 정계 진출 계획을 밝혔던 유누스 전 총재에 대한 보복인 듯하다”며 “하시나 총리는 수백만 명의 여성을 빈곤에서 구제한 그라민은행을 국유화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썼다. 또 “그라민은행을 분해하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일단 한발 물러섰다. 방글라데시 재무부는 6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그라민은행에 대한 지분율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아불 마알 압둘 무히트 재무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는 그라민은행의 소유권이나 경영 방식을 바꿀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WSJ는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부위원회의 공식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따를 걸로 예견됐으나 무히트 장관의 발언은 예상 밖”이라고 평했다. 

◆ “유누스 전 총재에 대한 정치 탄압” 반발 

방글라데시 정부 계획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유누스 전 총재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란 해석이다. AFP는 “유누스 전 총재가 2007년 정계 입문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후 하시나 총리와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했다. 유누스 전 총재는 아직까지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상태다.

유누스 전 총재가 지난 2006년 빈곤 퇴치 노력을 인정받아 그라민은행과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후 그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당시 유누스 전 총재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아버지’라는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다. 그의 성공을 보고 시티그룹과 HSBC 등 대형 은행들도 소액대출 사업에 속속 뛰어들었다. 

무함마드 유누스 전 그라민은행 총재/조선일보 성형주 전문기자
 무함마드 유누스 전 그라민은행 총재/조선일보 성형주 전문기자

2010년 12월에는 노르웨이의 한 방송사가 그라민은행이 기부금으로 받은 1억달러를 유누스 전 총재가 자기 소유의 다른 회사로 빼돌렸다는 내용을 방영해 파문이 일었다. 1년 후 유누스 전 총재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임 사유는 횡령 의혹이 아닌 나이였다. 당시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은 1940년생인 유누스 전 총재의 나이가 법으로 정해진 정년(60세)을 넘었다는 이유로 그라민은행에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전에 유누스 전 총재가 정년을 넘었을 때 이미 방글라데시 은행감독 당국은 총재직 유지를 허용한 적이 있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유누스 전 총재는 해임취소청구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 최종심에서도 패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그라민은행이 소액대출과 관련이 없는 회사들을 세워 은행 설립 취지를 흐렸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그라민은행 계열인 그라민폰은 현재 방글라데시 통신업계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최대 통신사로 성장했다. 노르웨이 통신사 텔레노르(지분율 56%)와의 합작사인 그라민폰은 증시 상장 후 현재 시가총액이 26억달러에 달한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유누스 전 총재 일가가 이들 사업을 통해 재산을 불렸다고 비난한다. 

무히트 장관은 지난달 의회에서 “유누스 전 총재가 회장직을 맡은 사회적기업들은 그라민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세워졌지만 주주들은 배당을 받지 못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누스 전 총재는 “(나는) 그라민이란 이름을 쓰는 회사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고, 그라민은행에서 돈을 빌린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WSJ는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를 대표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성공 스토리”라며 “그러나 최근 그라민은행 지분을 둘러싼 잡음은 지난 4월 1100명이 사망한 의류공장 사고 이후 추락한 국가 이미지를 다시 세우려는 방글라데시에 긴장을 더하고 있다”고 전했다.